철도와 더불어 대전에는 일본인들이 들어 왔다.
처음에는 철도 관련 기술자에서 그들을 보호한다는 명목하게 철도수비대가 들어 왔다.
일본인들이 가족을 데리고 대전으로 이주하게 되면서 일본일들을 위한 소학교와 고등중학교를 세웠다.
조선인들에게는 경찰, 헌병, 군대 등 억압기구로 탄압했다. 저항하던 이들은 감옥에 가두었다.
대전감옥(형무소)의 시원은 항일독립운동가들을 가두던 중구금시설이었다.
해방이 되어 형무소 문이 열려 모두가 석방되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형무소가 가득 찼다. 절반은 경제사범이었고, 절반은 정치사범이었다.
미군정은 제대로 군정을 펼치지 못해 민생은 파탄났고, 절도와 자살이 늘어 났다.
이승만은 단독정부 수립을 앞세워 자신의 기득권을 채우기에 급급했다.
제주4.3사건, 여순사건 등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던 사람들이 감옥에 갇혔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이승만은 제일 먼저 도망을 갔고, 대전에 온 다음날부터 산내 골령골에서는 총성이 울려 퍼쳤다.
대전형무소에 갇혀 있던 정치범들 뿐만 아니라, 보도연맹원을 포함하여 7천명 가량이 이승만 정권의 군인과 경찰에 의해 골로 갔다.
-2017.09.06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 산내 골령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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